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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냄비 증후군’

by 송은콩 2025. 9. 27.

오늘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이 자꾸 빠지는 이유를 주제로 치매와 ‘냄비 증후군’을 이야기해볼 예정입니다.

 

치매와 ‘냄비 증후군’
치매와 ‘냄비 증후군’

 

‘냄비 증후군’이란 무엇인가?

치매 환자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일상적인 행동이 자꾸 누락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가스 불을 끄지 않거나,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하는 상황이다. 마치 끓던 냄비를 올려두고 깜빡 잊은 듯한 모습에서 ‘냄비 증후군’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이 현상은 단순히 건망증과는 다르다. 보통의 건망증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억을 떠올리거나, 상황 속 단서로 인해 기억을 되찾는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경우, 행동 자체가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아 아예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기억의 일시적 누락이 아니라 뇌 기능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냄비 증후군은 치매의 진행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으로, 초기에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더 중요한 일상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단순 실수로 여기지 않고, 뇌의 변화로 인한 신호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 일상적인 행동이 빠질까?


1) 뇌의 ‘실행 기능’ 저하

불 끄기, 문 잠그기 같은 행동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뇌 속에서 여러 과정이 연결되어야 완성된다. 먼저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손을 움직여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다. 치매가 진행되면 이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약해져, 계획은 떠올리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환자가 분명히 ‘이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단계인 ‘문을 잠근다’는 행동은 건너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가족이 보기엔 ‘깜빡했다’로 보이지만, 사실은 뇌의 흐름이 중간에서 끊긴 결과다.

 

2) 기억의 단절

냄비를 올려둔 사실이나 불을 켰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당연히 꺼야 한다는 생각도 이어지지 않는다. 치매 환자에게는 단기 기억이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행동 직후의 과정이 바로 누락되곤 한다. ‘기억이 끊기는 것’이 반복되면서 일상적 행동이 비어버리는 것이다.

 

3) 주의 집중력의 약화

치매 환자는 주의가 쉽게 분산된다. 부엌에서 물을 끓이다가 전화가 오면, 다시 돌아왔을 때 아예 처음부터 하던 일을 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산만함이 아니라, 주의 집중과 전환 능력이 떨어진 결과다. 이렇게 작은 방해 요소에도 행동의 흐름이 끊어져 버린다.

 

가족이 기억해야 할 대처 방법


1) 환자를 탓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실수에 답답하고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환자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뇌 기능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탓하거나 화를 내면 환자는 더 큰 불안과 위축을 느끼게 된다.

 

2) 환경을 바꿔 안전을 확보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경을 미리 조정하는 것이다. 가스 불 대신 자동 차단 기능이 있는 전기레인지를 사용하거나, 현관문에는 자동 잠금 장치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행동을 깜빡하더라도 큰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환경을 세팅하는 것이 우선이다.

 

3) 눈에 잘 띄는 표시를 활용한다

‘불을 끄자’, ‘문을 잠그자’ 같은 간단한 문구를 종이에 적어 붙여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치매 환자는 복잡한 설명보다 간단한 시각적 자극에 더 잘 반응한다. 또한 행동해야 할 순간에 알람이나 음악을 울리도록 설정하면 행동을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4) 행동을 함께 확인한다

가능하다면 가족이 함께 행동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외출할 때는 “불 껐는지 같이 볼까?” 하고 환자와 함께 확인한다. 이를 통해 환자 스스로도 안심하고, 가족도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5) 작은 성공을 인정한다

환자가 스스로 불을 끄거나 문을 잠근 것을 가족이 확인했다면, “잘 하셨다” 하고 칭찬하는 것이 좋다. 치매 환자는 자신감을 잃기 쉽기 때문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냄비 증후군’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로 인한 뇌 기능 저하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불 끄기, 문 잠그기 같은 작은 행동이 빠지는 것은 환자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실행 기능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면, 불필요한 다툼이나 갈등을 줄이고 환자를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 나아가 환경을 안전하게 바꾸고, 환자와 함께 확인하며, 작은 성공을 칭찬하는 습관을 들이면 환자와 가족 모두가 더 안정적인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냄비 증후군’은 치매가 보내는 하나의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심히 넘기지 않고 세심하게 대응할 때, 환자의 삶의 질과 가족의 평안함을 동시에 지킬 수 있다.